Skip to content

기도인연합기도인연합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교황의 최근의 말들과 그 영향력에 대한 예언적 이해 

장병호 (삼육대학교 명예교수, 전 신학대학원장)    


 지난해에 한국을 방문한 제265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그 어느 교황보다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교황의 방문 전후의 국내정세는 세월호 참사로 요동쳤고 전국은 혼돈과 혼미 속에 빠졌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세월호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자녀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병상린의 정신으로 아쉬움과 회한의 시간으로 힘들어했었다. 이 일로 남남갈등의 심각한 국론 분열 분위기 속에 국가적 사건으로 커진 세월호 여파를 잠재울 구세주 같은 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반도 등장은 가톨릭신드롬/프란치스코 신드롬(Catholic/ Francesco syndrome)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오마이뉴스는 그의 방문을 이렇게 묘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4박5일 동안 한국은 더 없이 행복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만난 듯 저마다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소원은 곧 이뤄질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또 메시아의 손에 이끌린 듯 아프고 낮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 상처는 곧 치유될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세월호 특별법까지 만들고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결정했지만 본질에서 벗어나 정치화한 듯이 보이는 과도한 요구들도 있어 국민적 관심 사안으로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는 2013년 3월,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의로 추기경단의 콘클라베에서 다섯 번의 투표 끝에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예수회 출신과 남미에서는 처음으로, 그리고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Papa Francesco)란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첫 교황으로 그는 가는 곳 마다 가톨릭교인들 뿐만 아니라 세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빈, 겸손, 소박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를 따르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교황이 되자마자 실천했다. 그는 자신의 막역한 친구인 후메스 추기경이 그에게 한 말,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마시오!” 라는 조언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업적은 2013년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스[Times]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후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 그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을 해냈다. (교황청의) 말만 바꾼 것이 아니고 음악도 바꾸었다.” 고 평가한 말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교황의 한국 방문 시에 남긴 말들


지난 해 한국 방문에서 남긴 프란치스코의 “9가지 삶의 지침”은 가톨릭 교인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복음처럼 다가왔고 여전히 그 영향력은 유효한 듯이 보인다. 1) 교황 자신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선 자신의 교황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황은 부자건 가난하건 똑같이 사랑한다. 그러나 교황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북돋워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2) 정치에 대해: 오늘날 정치는 매우 타락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정신으로 왜 그것이 타락하지 않도록 하지 않는가 하고 물어야 합니다.  정치를 하는 모두가 단 두 가지만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말입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의무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해야하며 가난과 부패에 익숙해져서 무 각감 해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행동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합니다.  3) 빈부격차: 우리를 둘러싼 가난과 부패에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행동해야 합니다.  “엄청난 연봉과 보너스는 탐욕과 불평등에 기반을 둔 경제의 상징입니다.”  4) 연애: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을 때 ‘이렇게 해도 될까요?’하고 물어보고 도움을 받을 때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잘못했을 때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5) 인간관계: “‘뒷담화’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뒷담화는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뒷담화는 사람들의 명성을 헐뜯으니까요. 그래서 뒷담화는 매우 고약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빨아 먹는 캐러멜처럼 좋거나 재밌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무리를 불쾌하게 하고, 우리 역시도 망치고 말지요! 제가 확신을 갖고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씀드리지요! 만약 우리 모두가 뒷담화를 하고자 하는 욕구를 다스릴 수만 있다면, 종국에 가서는 모두 성인이 될 것입니다. 정말 좋은 방법 아닌가요!”  6) 가톨릭교회: 비싼 돈 들여 나를 보러 오지 말고, 그 돈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해주세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부정에 맞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인간 존엄과 형제애, 연대는 모든 사회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수백만 명의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데도 차를 마시며 고상하게 신학을 토론하는 신자들이 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하느님과 돈을 같이 섬길 수는 없습니다. 돈은 처음에 편리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허영이 따라옵니다. 허영은 교만으로 옮아갑니다. 어느 누구도 돈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권력추구는 죄악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만이 자신을 높이는 길입니다.  7) 동성애: 사목자는 본당 신자들을 상담할 때 간혹 동성애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남에게 숨기고 싶은 이야기까지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개인의 특별한 사생활을 물리적으로 간섭할 권한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창조하셨다면, 지금 그 자유인을 간섭하려는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예수님이 동성애자를 만났다면 그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비난하고 거부하셨을까요?  7) 피임: 콘돔 사용을 극구 반대하는 사람들은 온 세상의 일을 콘돔의 사용 여부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8) 여성: 여성은 아직 사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존재는 많이 강조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눈에 띄게 할 여지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성우월주의의 유혹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의미겠지요.   9) 무신론자: 신의 자비에는 한계가 없다.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  나는 무신론자로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 사람만이 가진 인간성을 심판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들을 접하노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과 책임감은 그렇게 말하도록 교회적 사회적 여건이 조성된 것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말과 언어의 다중성이 가져다주는 마음에 닿는 말의 의미가 물리적 환경과 지위,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뭇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과연 그가 누구이기에 그런 말로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비록 프란치스코 교황의 근래의 말들에 의도적으로 이의를 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오랜 중세 암흑기 동안에 있었던 교황과 가톨릭의 말과 교서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재림교인들은 오랜 성경연구를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작은 뿔과 큰 말(단 7:8, 11, 20, 21, 24, 25), 불법의 사람/비밀(살후 2:3, 7)을 도전적이고 교만하며, 권위가 실린 종교적이고도 정치적인 한 "거대한 거짓 종교제도"(a gigantic system of false religion) 의 영향력의 표현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개신교인들과 심지어 재림교인들 조차 교황에 대해 호감을 갖게 만드는 교황의 말과 행보에 대해 교황(pope)을 중심으로 한 교황권(papacy)과 그 종교적이고도 정치적인 가톨릭 체제(catholic system)를 바로 이해하지 않고는 그간의 선입견적 이해와 지금의 상황적 이해를 조합하여 보편적으로 판단하기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황의 말이 결코 교황 개인의 인격과 도덕적 기품에서 나온 개인적인 사견이나 논리의 표현이 아님을 간과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교황은 구두(viva voce)로만 말하지 않고 회의의 결의나 개인의 신앙과 정책적 의지를 교서(dictatus)를 통해 공식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사견이든 공견이든 교황의 말은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권위와 목양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은 교황의 개인적인 호의와 인사 형 언어조차도 가톨릭의 존재와 가치로 연결시켜 더 호의적으로 보려는 가톨릭우호신드롬을 낳고 있는 것은 매우 의아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세인을 놀라게 하는 일이다.


교서[Dictatus]로 말하는 교황


교서로 말하는 교황의 말의 한 예를 157대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1073-1085)의 교황교서(Dictatus Papae)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진 말인지를 볼 수 있다. 그는 카노사의 굴욕사건으로 알려진 유명한 기독교 역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Heinrich IV/ 1056-1105)를 파문하고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잉글랜드, 프랑스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작은 나라들과도 교섭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그는 모든 나라들에 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며 황제들의 통치자로 군림한 교황이다. 그의 재위 전에 있었던 1509년 4월의 라테란 회의(Lateran Council)가 교황의 선거를 추기경-감독(cardinal-bishops)들의 손으로 넘기고, 추기경의 정치적 탁월성(political pre-eminence)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결의한 이 후 교황의 권위는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다.  그는 1075년 사순절 로마회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교서를 발표했다.  1) 로마교회는 유일하게 하느님에 의해 세워졌다. 2) 로마 교황만이 홀로 보편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3) 교황만이 주교들을 파면하거나 용서할 수 있다. 4) 교황 사절들은 비록 낮은 지위라 할지라도 종교회의에서는 주교보다 우위에 있으며 주교들에 대해 폐위를 선언할 수 있다. 5) 교황은 부재중인 주교도 해임할 수 있다. 6) 그 중에서도 특히 파문당한 자들과는 결코 같은 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7) 시대의 상황에 따라 교황만이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집회를 소집하고, 참사회 직속 대수도원을 설립하고 다른 한편 부유한 교구는 나누고 가난한 교구는 통합할 수 있다. 8) 오직 교황만이 제국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 9) 교황은 모든 제후들로부터 발에 입맞춤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다. 10) 교황의 이름만이 교회들 안에서 격식 갖추어 불릴 수 있다. 11) 교회 내에서는 교황의 이름만 불려야 한다. 12) 교황은 황제들을 퇴위시킬 수 있다. 13) 만일 필요하다면 주교를 다른 교구로 이동시킬 수 있다. 14) 교황은 자신이 원한다면 어떤 교회의 성직자라도 임명할 수 있다. 15) 교황에 의해 서품 받은 자는 다른 교회를 통치할 수 있으나 다른 이들의 명령은 받지 않는다. 16) 교황의 지시 없이 개최된 어떠한 공의회도 보편 공의회로 지칭되어서는 안 된다. 17) 어떤 한 문서나 원전도 교황의 권한 없이 교회법으로 간주될 수 없다. 18) 교황의 선언은 누구에 의해서도 다시 철회될 수 없으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철회할 수 있다. 19) 교황은 누구에 의해서도 재판받지 않는다. 20) 어느 누구도 사도좌에 호소한 사람에게는 단죄할 수 없다. 21) 모든 교회의 중대한 사안들은 사도좌 앞에 가져와야 한다. 22) 로마 교회는 한 번도 오류에 떨어진 적이 없었고, 또한 성서의 증언대로 앞으로도 결코 오류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23) 만일 로마 교황이 법적으로 생성되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성 베드로의 공로로 거룩하게 된다. 24) 교황의 명령과 승인으로 그의 아랫사람이 고소를 제기할 수 있다. 25) 공의회를 소집하지 않고도 교황은 주교들을 면직시키거나 용서할 수 있다. 26) 로마 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자는 가톨릭신자로 간주될 수 없다. 27) 교황은 아랫사람들을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충성서약으로부터 풀어줄 수 있다. 

 언급된 상기의 교서는 18세기의 한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저술한 대(大)백과사전[Prompta Bibliotheca] 에서 발췌한 전형적인 사례들에서 “교회의 문헌은 교황의 거만하고 신성 모독적인 주장들로 가득 차 있다”고 제시한 재림교회성경주석의 언급을 뒷받침하고 있다. 


가톨릭과 교황의 교서[말]에 대한 이해


재림교회는 가톨릭을 보는 교단차원의 공식적인 이해의 틀을 가지고 있다. 요약하자면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과거와 미래, 특히 가톨릭의 심각한 불관용과 박해역사를 기억하고 있으며, 가톨릭은 정부와 연합하여 종교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성경 외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박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재림교회의 예언적 견해의 유효성(validity of our prophetic views)을 확신하면서 성경의 예언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제 칠일 안식일에 초점을 맞춘 전대미문의 소란기가 있을 것으로 믿으며, 특히 주요 기독교단체들을 포함하여 세계 종교들이 하나님과 안식일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연합할 것이며, 교회와 정부가 연합하여 다시 한 번 광범한 종교탄압(widespread religious oppression)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공식적인 진술은 엘렌 화잇이 말한 미국의 개신교와 강신술, 그리고 로마 가톨릭과의 삼중연합이 결국은 양심의 권리를 유린하는 일에 로마교회의 발자취를 따르게 될 것이라는 예견과도 맥을 같이 한다. 교회와 정부의 연합과 박해의 재현 가능성을 엘렌 G. 화잇의 글과 이에 기초한 다수의 연구들을 통해 재림교회가 일관성 있게 예견하고 있다. 재림교회는 오늘날 미국이 이러한 예언들을 성취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본다. 구스타프 니브가 기고한 “종교와 정치의 혼합 가능성”이라는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자세에 놀랄만한 변화에 직면하여, 종교의 정체성과 정치적인 의견에 대한 새로운 범세계적인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중은 한 세대 전에 믿었던 것과는 달리 대 다수의 교회들이 정치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허용하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Idaho Statesman, 25 June 1996, citing the New York Times News Service).  “합중국의 주요한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교리에 의하여 서로 연합하여 그 국가로 하여금 자기들의 교령(敎令)을 강제로 실시하게 하고, 그들의 제도를 강압적으로 유지하려는 때가 이르면, 그 때에 개신교 미국은 로마교적 교권 정치의 우상을 만들게 되고, 그 필연적 결과로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법률적 형벌을 과하게 될 것이다.”(쟁투, 445) 

 가톨릭교회의 교황에 대한 세속적 종교적 신분과 위상에서 나온 그간의 교회차원의 역사적인 결의와 신자들의 이해에 비춰볼 때 교황의 말 하나 하나는 결코 사견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교황의 말은 가톨릭의 소리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교황권의 의지력과 영향력의 표현으로 교황의 권위와 절대권에 힘입은 말들이다. 재림교회성경주석은 가톨릭의 역사에서 이런 말들 중 다수의 말들, 특히 하나님의 법에 대한 변경이나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을 핍박하는 교황의 과거 교서나 말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큰 말”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단 7:8, 11, 20; 계 13:5).  비록 다니엘서 7:25에는 제임스왕역(KJV)에 “큰”(great) 이라는 단어가 “말들”(words)에 부가되어 있지만, 아람어로 밀린[millin, 단수 /millah]이라는 단어에 추가되어 “큰말”의 주인공인 작은 뿔을 중세에 다수의 학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은 교황/교황권(papacy)과 관련시켰다.  재림교회는 또한 정치적이고도 종교적 특성을 갖춘 다니엘서의 예언에 등장하는 작은 뿔(little horn)의 이런 말을 “참람된 주장들/말들”, 곧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주장들로 해석하고 있다. 중세 암흑기에 가톨릭을 향해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종교 개혁자들, 곧 루터, 칼뱅, 녹스, 크랜머들이 다니엘서 7장과 17장의 작은 뿔과 큰 성 바벨론을 로마 내에 있는 배도의 본부(the great apostasy with headquarters in Rome)로 해석하므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와 교황들의 많은 말과 주장들이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말이나 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실례는 다음과 같다. ““교황의 권위는 매우 크고 높아서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교황은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의 왕으로 삼층 면류관을 쓴다. …교황은 말하자면 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상의 나라뿐 아니라 하늘나라의 지휘권을 위임하신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자들의 유일한 지배자, 왕들의 우두머리, 충만한 능력을 가진 자이다. …”  윌리엄 H. 셰이(William H. Shea)는 작은 뿔의 등장과 역사에서의 적용을 로마의 주교에 두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 또는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칭호를 유대인들이 정죄했던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예수의 주장(마 9:2-6)과 비교하였다. 즉 사제 훈련 요람인 “사제의 위엄과 의무, 즉 셀바”(Dignities and Duties of the Priest; or Selva)에 하나님은 미사 시에 예식을 집행하는 사제의 영적 상태와는 상관없이 제단에 강림하실 의무를 지닌다는 주장에 근거한 고해성사(告解聖事)는 하나님을 오히려 사람의 통제아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는 실로 신성모독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중세 암흑기 동안에 로마 가톨릭과 교황의 막강한 정치적이고도 종교적인 권한에 비추어볼 때 철의 왕국 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유럽이 열 나라로 나누어진 후, 그 뿔들 가운데서 등장한 작은 뿔(little horn)이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단 7:25)이라는 다니엘의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한 것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황들과 가톨릭의 결의와 말들이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심의 자유마저 억압하고 박해했다.  우리의 관심은 한때와 두 때 반 때, 곧 1260년 동안의 교황권의 전성시기에 있었던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미구에 다시 재현될 것이라는  진술들에 있다. 이에 대해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로마교회는 그의 계획과 경영 방식이 매우 원대하다. 그는 그의 세력을 넓히고 전 세계를 지배할 세력을 다시 얻고, 박해를 부활시켜서 개신교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 위한 치열하고 결정적인 투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온갖 계책을 다 써서 그의 영향력과 권세를 증가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오늘날 도처에서 로마교는 세력을 얻고 있다.” 


남은교회[성도]의 준비


재림성도들이 이러한 예언의 성취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세한 일들에 지나치게 예민하여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지막 역사 현장에서 일어날 작은 뿔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언은 우리에게 적어도 두 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라는 사실(단 2:21, 44, 47)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자들”(계 12:17)로 하나님 편에 굳게 서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우리자신의 영혼을 위한 준비를 넘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바로 그 일을 위해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타락한 적이 결코 없는 천사들을 부르지 않으시고 연약한 인간을 택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호소에 모두가 동참하여 마지막 시대를 위한 우리의 선교사명을 다하는 것이다(마 28;18-20; 행 1:8; 계 14:6-12; DA 296; 9T 103).

 이 사실을 재림교회 기본교리 제12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 교회는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되었지만, 마지막 시대 즉 배도가 만연한 시대에, 한 남은 자손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도록 불러냄을 받았다. 이 남은 자손은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알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전하고, 그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선포한다. 이 선포는 요한계시록 14장에 세 천사로 상징되어 있다. 그것은 하늘에서 심판하시는 사업과 동시에 일어나며, 땅 위에서 회개와 개혁 사업을 완수한다. 모든 신자들은 이 전 세계적인 증거 활동에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4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 선지자의 예언 정말 이루어 질까? - 조경신 / 진리를 찾는 사람들 2016.01.19 780
63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 전심전력으로 구하라 - 고문경 / 기도인연합 2015.11.01 795
62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 기도-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 안상기 / 뉴욕중앙교회 담임 2015.11.01 929
61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기도 운동의 의미를 다시 돌아 본다 - 성선제 / 동경한인 교회 담임 2015.10.05 872
60 2015 일본 기도인연합 기도대회에 부치는 글 - 이 시대의 연합기도운동 - 한규형 / 기도인연합 2015.09.13 917
59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 김진원 / 그린스보로 교회 담임 2015.09.13 933
58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복음서와 종말론 (논찬) - 손경상 / 별새꽃돌 자연탐사과학관 2015.08.17 931
»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교황의 최근의 말들과 그 영향력에 대한 예언적 이해 - 장병호 (삼육대학교 명예교수, 전 신학대학원장) 2015.08.17 1297
56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복음서와 종말론 - 최휘천 / 앤드류스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2015.07.26 1085
55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상황과 법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뵈오며 - 이학봉 / 정읍중앙교회 담임 목사 2015.07.26 1123
54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성소신학과 현대진리 (논찬) - 이국헌 교수/삼육대학교, 교회사 2015.06.19 1374
53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성소신학과 현대진리 - 남대극 / 전 삼육대학교 총장 2015.06.19 1047
52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현대진리와 남은무리의 사명 (논찬) - 이학봉 목사 / 정읍중앙교회 2015.06.19 1198
51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성령과 사랑 - 이기성 / 시애틀 동부교회 담임 목사 2015.05.12 1328
50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손등과 손바닥 사이 같은 기도와 감사 - 김명호 / 기도인연합 운영위원 - 전 삼육대교수 2015.04.22 1317
49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현대진리와 남은무리의 사명 (II) 장병호/삼육대학교 신학과 명예교수-전 신학 대학원장 2015.04.22 1669
48 기도인연합 신앙 단상: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 - 김상도 / 전 동중한 합회장 2015.04.22 1348
47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 현대진리와 남은무리의 사명 (I) 장병호/삼육대학교 신학과 명예교수-전 신학 대학원장 2015.03.22 1935
46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현대진리 세미나 (II) - 이상락 /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세미나 2015.02.22 1397
45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현대진리 세미나 (I) - 김일목 / 삼육대학교 신학과교수 2015.01.18 2240

Prayer Coalition TEL: 619-758-4006 • FAX: 858-909-8214

기도인연합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