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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인연합기도인연합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2014


복음서와 종말론 



최휘천 / 앤드류스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본문: 마가복음 13:1-37  

총 주제: 세상의 종말은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동일한 방법으로 올 것이다. 

서론: 마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함께 다루신다. 일부 학자들은 그 이유를 제자들이 예수님께 예루살렘과 세상의 끝을 두 가지로 나누어 질문을 던진 제 4절에서 찾는다. 즉 제자들이 두 질문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답변을 몰아서 한꺼번에 주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 13장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면 이 이론은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종말론을, 일차는 예루살렘의 멸망 이차는 세상의 종말, 이런 방식으로 두 번에 나누어서 다루시지 않고 두 주제를 한꺼번에 섞어서 다루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가복음 13:5-8)  

이 말씀은 마가복음 13장의 맥락에서 볼 때 예루살렘 멸망에도 적용할 수 있고 또 역시 세상 종말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이런 복합적 수사형식은 무엇을 뜻하는가? 


I. 종말에 대한 전체적 윤곽


A. 예루살렘은 이 세상과 세상의 전체 역사를 상징한다.  세상의 종말은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원인과 원리를 밝히 깨달아 아는 것이 현명하다. 


B. 예루살렘은 그 성을 지키시던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감으로 멸망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을 수호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가기 때문에 멸망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떠나가심을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 그 성 안에 존재했던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아래과 같은 현상의 심화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철회로 이어진 사실을 볼수 있다. 


(ㄱ) 권력다툼 거짓 예루살렘의 함락이 있기 전 7년은 복수의 유대주의 파벌들 사이에 일어난 권력다툼 때문에 무려 6명의 대제사장들이 연이어 바뀌었다.   어떤 경우에는 1년 사이에 대제사장이 두 번씩이나 경질되는 일도 빚어젔다.  정권의 극심한 불안정과 리더쉽의 결여는 곧바로 그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원칙이 세상의 종말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ㄴ) 향락과 음란 로마제국의 사치문화에 친숙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등의 부유층 유대인들은 성전(聖殿)과 관계된 정치적 수단을 통해 재산을 모아 각종 향락과 음란을 즐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ㄷ) 탐욕과 각종 부정부패  예루살렘 멸망 직전 성전의 분위기는 금전과 부동산에 대한 탐욕으로 매우 부패해 있었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것이 이의 단편적 예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종말직전의 세상은 재물과 부동산에 대한 집착으로 썩어버린 사회가 될 것이며 교회 역시 같은 양식의 표변(豹變)을 면치 못할 것이다.  

 (ㅁ) 증오  예루살렘의 멸망의 원인을 줄여서 말하자면 그것은 여러 파벌로 균열된 사회 내에 이유없이 흐르는 증오심과 상호견제라 할 수 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거두어지면 자연히 인간의 마음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그 대신  증오심으로 차오른다. 화잇부인은 시대의 소망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멸망 전에 사람들은 주권을 잡으려고 서로 다투었다. 황제들은 살해되었고 보좌를 잇기로 예상되는 자들도 죽임을 당하였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이 있었다” (628).  세상종말에도 이와 동일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ㅂ) 폭력 멸망을 앞둔 예루살렘 성 안에는 당시 극단 무장세력이었던 젤로트(zealots)들과 특히 그 중 시카리(sicarii)들이 정권싸움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호소하면서도 잔인무도한 폭력과 협박을 통해 백성들을 억눌렀다.  예루살렘은 머지 않아 무정부 상태에 빠져 마비되고 말았다.     

(ㅅ) 민족주의  마사다에서 끔찍한 집단자결을 감행한 엘리에젤 벤 야이르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요세브스의 사료(史料)들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유대주의 극단 무장세력 시카리는 유대주의라는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야심을 키웠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초래한 삐뚤어진 민족주의의 위험성과 비극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민족주의다. 자기 민족에 대한 갖은 학살과 만행을 저지르면서 민족주의를 호소하는 것은 엄이도령(掩耳盜鈴),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C. 어떤 공동체든 간에 상관없이 위에 언급한 현상은 그 공동체의 끝이 온 것을 알린다. 국가나 일정 사회단체, 심지어는 일개 가정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 끝은 항상 위에서 지적한 불안상태의 급격한 확산과 발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경우가 그랬다. 로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세기의 휘양찬란하던 유럽도, 우리 한국의 구한말도 그랬다.  그러나 그동안 있었던 종말현상들은 지역적 차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이기 때문에 세계 전체에는 제약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이상 언급한 불의와 부도덕의 현상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영이 이 세상을 단계적으로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적신호로 받아드려야 한다. 


D.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두 단계로 집행된다.  제 1단계 평화의 시기와 제 2단계 심판의 시기다. 


제 1단계 심판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소원대로 살도록 내어버려 두시는 평화의 시기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8-32절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내어 버려두사"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하므로 진노와 심판의 첫 단계를 설명한다.. 


(ㄱ)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Rom 1:24) 

(ㄴ)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Rom 1:26)  

(ㄷ)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Rom 1:28) 

(ㄹ) 로마서 1:18-32절의 맥락에서 볼 때 내어 버려두신다는 표현은 이 세상이 더욱 깊은 도덕적 어두움 속으로 빠져들어 가도록 허락 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평화와 자유의 시간를 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각자 소원대로 살도록 내어두시는 이유는 인간의 뇌리속에 숨어있는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도록 이완(弛緩)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살전 5:3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제 1 단계 심판을 평화의 시기라고 부른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여기서 사도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평화의 시기는 누가 과연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지 그 진실을 만인이 볼 수 있도록 외부로 노출시킴으로써 사물의 정의(定義)를 드러나게 하시는 대쟁투적 맥락에서 볼 때 사필귀정(事必歸正) 매우 중요한 시기다. 


. 제 2 단계 심판은 경고 없이 돌연히 우리 위에 덮치는 진노의 시간이다. 우리는 이런 형식으로 집행되는 제 2 단계 심판을 예루살렘의 멸망과정에서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은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멸망했다. 예루살렘이 티투스 장군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 그 성곽 전체의 크기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예를 들어, 티투스 장군이 붕괴한 제 3 성곽은 주후 66년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이전 해에 완성된 것으로써 현재 성지술례 중 볼 수 있는 예루살렘 성곽보다 거의 두배정도의 크기였다. 예루살렘 성전 역시 복수의 신축을 통해 휘양 찬란한 모습 속에 그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무 누구도 그토록 견고하고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이 문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화염 속에 사라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티투스 장군 역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성전만은 보전하고 싶어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제 일 성곽 안 쪽으로 던진 불이 예상을 뒤집어엎고 걷잡을 수 없이 성 안쪽까지 급속히 번져나가 성전마저도 삽시간에 삼켜버린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 심판도 동일한 형식으로 집행될 것이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광경을 2001년 9월 1일 월드 트래드 센터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보지 않았는가. 콘크리트와 철골로 견고하게 건축된 메가급 고층 빌딩들이 손을 쓸 시간도 없이 맥을 못 추고 돌연 주저앉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마도 그 참혹한 광경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인류의 종언(終焉)과 심판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갑자기 예고 없이 세상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II. 막 13장을 통해 보는 세상의 종말


A. 세상의 참혹한 종말 (막 13:1-2) 


ㄱ.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막 13:1-2) 


B. 하지만 종말이 문 앞에 이른 상태에서도 세상은 계속 평화스러워 보임으로 안일함을 부른다. 


ㄱ.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밷후 3:4) 


ㄴ.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사 56:12)  


ㄷ.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ㄹ. “방탕함과 불경건한 향락으로 가득 찬 세상은 잠들어 있으며 육적인 안전에 마비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의 오심이 먼 훗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경고를 비웃는다.” (시대의 소망 635) 


C. 미혹과 혼동의 시간 (막 13:5-8) 


ㄱ.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막 13:5) 


ㄴ. 거짓 지도자. 많은 사람들이 와서“내가 그로라” (6절) 외칠 것이다.   “내가 그로라” 라는 표현은 반드시 거짓 선자자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라고 선전한다기 보다는 그리스도 역할을 대행한다는 뜻을 가졌다.    21-22절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막 13:21-22).   6절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제 1 단계 심판, 곧 평화의 시대에 있을 거짓 지도자의 활동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는 시간이 지연됨에 따라 복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영적 해이(解弛)를 이용해 이들을 잠에서 깨운다는 명목 아래 마치 자신들이 종말에 대한 무슨 특별한 계시라도 가진 것 처럼 행동하며 충격적인 기별을 전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21절과 22절에서는 제 2 단계 심판, 곧 환난 때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이 때가 환난의 시기인만큼 거짓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계시 등을 통해 하나님께로 직접 받은 특별한 생존의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것 같이 선전하여 자신을 따르게 하는 종교적 사기행위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 나태함도 피해야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음성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  마지막에 살아 남는 이들은 참된 목자의 음성을 구별할 줄 아는 자들이다. 


ㄷ. 미혹. 우리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여러 천인재를 보면서 미혹되기 쉽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막 13:7).  많은 이들이 각종 뉴스매체를 통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 한다.  예를 들면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또 요즘 우리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고가 일어 날 때마다 세상의 끝을 선고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하신다.  이 모든 것들은 “재난의 시작”(8절)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물론 각종 재난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각성하고 더욱 철저히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세상 끝이 눈앞에 닥친 것 같이 흥분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 경고를 주신 이유는 여러 재난들이 발생했는데도 바로 종말이 오지 않을 경우 종말에 대한 공포로 인해 생긴 흥분이 더 깊은 영적 나태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ㄹ. 재난의 소문. 화잇부인은 우리가 재난의 소문에 요동치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속지 말라. 이 징조들은 그분의 심판의 시작이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한다” (시대의 소망 629) .   우리는 위에서 로마서 1장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죄인들로 하여금 불의를 행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방법으로 집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각종 재난들을 세상에 허락하시는 이유는 비록 이 세상이 평화로워 보인다 할지라도 그의 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재난들은 인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使)의 단계적 철회를 세상에 알리는 경종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접하면서 공포에 빠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나를 지키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영이 과연 아직 내 안에 머물고 계신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시간이다.


D. 끝으로 주어지는 회개의 기회 (막 13:9-1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막13:9).   제 1 단계 심판에서 주어지는 평화의 시기가 끝나갈 무렵 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핍박이 일어난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이 사실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로 부터 극단 무장세력 유대파들이 로마와 전쟁을 일으킨 주후 66년까지 약 30년간 사도들의 눈부신 복음사역의 활동이 있었다. 사도바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도들은 62년부터 66년사이에  순교했다.  사도행전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핍박들을 통해 사도들이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모진 핍박과 모함에 말려들었지만, 그 결과로 로마의 벨릭스 총독 앞과 (행 24:10-21), 아그립바 대왕과 배스도 앞에서 (행 26:1-32) 그리스도를 증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마지막 환란을 생각하면 도망갈 생각부터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오류다.  핍박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기회다.  화잇부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유대 백성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증인들이 체포되고 심문을 받으며 옥에 갇히는 경우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다” (630).  요즘같은 평화시대에도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이런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혹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사람들 앞에 증거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기회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E. 피난하라는 마지막 신호 (막 13:14-20).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남은 무리가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최후의 피난신호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14절).   물론 이것은 베스페시언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의 출입을 금지할 것를 내다보시고 한 예언이다.  로마군의 깃발이 보이거든 성을 떠나라는 이야기였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성에 들어간 사람들, 혹은 성안에 그냥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고를 받아드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군의 깃발이 이 산 저 산에 선 것을 보고 즉시 예루살렘 성을 떠나 해를 면할 수 있었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최후의 종말 직전, 과연 어떤 양식의 도피신호가 주어질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포위 되는 상황을 보는 순간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있었기 때문이다.  말세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그리스도와 매일 동행하는, 곧 목자의 음성에 익숙한 자들은 최후의 피난신호가 주어질 때 바로 그 의미를 깨닫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도피해 해를 면케 될 것이다.  15-16절에서 지붕에 있는 자들은 물건을 가지러 집에 들어가지도 말고, 밖에 있던 사람들은 겉옷을 가지러 성안으로 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 마지막으로 떠나라는 피난신호가 떨어지는 순간 사실상 우리에 주어지는 시간은 약 10분에서 15분 정도밖에 안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피난경고가 내리면서부터 사람이 도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지를 본 바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 걱정만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 속에 안주하면 안 된다.  항상 깨어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F. 환난의 성격 (막 13:19)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하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환난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1260년의 핍박과 마지막에 있을 환난을 섞어서 복합적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막 13:20 설명 참조).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이미 이 환란의 성격에 대해서 매우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암흑시대는 물론, 근세기 공산치하에서 스탈린이나 모택동 등의 독재자들이 가했던 박해, 또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주의가 유대인들을 향해 종족학살을 감행했던 홀로코스트 등이 그 예다.  핍박의 강도(强度)는 변할지 모르지만 핍박의 성격은 항상 같다. 그것은 양심의 탄압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환란을 생각할 때 물리적 핍박과 고통을 두려워하지만 핍박은 사실상 양심 문제다.  왜냐하면 양심을 버리고 독재정권과 손잡고 협력하기만 하면 물리적 핍박은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소위 이슬람국가(ISIS) 극단 무장세력들이 북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기독교인들과 타종교인들을 대상으로 강제개종을 강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핍박은 환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선택, 곧 양심의 자유를 고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환난을 이기는 사람들은 세 가지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그의 약속을 굳게 믿는다.  둘째, 성경 말씀 위에 기초해서 양심의 자유를 지킨다.  셋째,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을 용서한다.  지금까지는 극심한 환난과 핍박이 일개 국가나 대륙에서 일어났지만 최후에 있을 환난과 핍박은 범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날 것이다. 현대 기계문명과 무기들 역시 극도로 발달한만큼 하나님을 믿는 굳센 믿음이 아니고는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항상 진실을 말하며, 양심적 생애를 사는 일을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반복해서 연습해야한다.        


G. 마지막 환난 (막 13:20)  “이는 그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막 13:19-20).  이 구절에서 언급한 환난은 한편 24-25절에서 해가 어두워지며 별들이 떨어질 것에 대한 예언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며, 또 다른 한편 계 6:12절과 대조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막 13:19-20은 1260년의 대환난을 암시한다. 즉, 암흑시대가 끝나면서 1755년에 있었던 리스본 지진, 1780년 5월 19일 뉴잉글랜드 일대에서 있었던 암흑일, 1833년 11월 13일 역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일어난 무수한 유성들이 떨어진 사건을 예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특기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종말이 수천 년 후에 있을 것을 아시면서도 마치 바로 눈앞에 이른 것처럼 말씀하셨다는 것.  둘째, 환난의 길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 결정된다는 것.  셋째, 예루살렘의 멸망 직전 있었던 핍박과, 주후 538년부터 1798년까지 1260년간 있었던 암흑시대의 핍박과, 또 세상 끝에 있을 핍박을 섞어서 복합적으로 설명하셨다는 것.  이 세 가지를 고려할 때 우리는 마지막 환난에 대해 다음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첫째, 마지막 하나님 백성의 생존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점과, 둘째, 비록 죄악이 세상에 편만하고 핍박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우리가 당하는 환난의 유무(有無)와 길이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점, 이 두 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당하든지 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류역사와 자연계를 동시에 통제하시는 절대자라는 사실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남은 백성의 징표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살전 5:16-18). 우리는 자신이 과연 그런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H.   재림 (막 13:26-32).  재림은 세상 끝에 있을 최후의 사건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 13:26).   재림 이후에는 더 이상의 환난이 없다.  모든 환난은 재림으로 끝난다.  이점에 대해서 흔들리면 안 된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곧바로 심판이 집행되고 구원 받은 이들은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없는 세상으로 옮겨가게 된다.  예수님의 강림, 또는 성도들의 하늘 입성 이후에도 세상에 환난이 계속 일어난다는 사대주의자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은밀하게 오셨다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도 세상역사가 계속 발전해서 결국 눈부신 천년기를 맞이한다든지 등의 이론들도 역시 아무 성서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끝으로, 예수님은 아무도 재림의 시간을 알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2).   이 말씀의 의미는, 한 마디로, 각종 예언연구 등을 통해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사람들은 다 틀렸다는 이야기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 아무 누구도 재림의 때는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오직 끝까지 인내하고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막 13:35-36)   


III. 결론


A. 재림전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두 단계에 걸쳐 세상에 임한다.  첫째, 제 1 단계 심판은 평화의 시기에 이완 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 각자 소원대로 살도록 내어 버려두시는 과정이다.  이런 시기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숨어있는지, 즉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지 아니면 돈과 명예와 재물을 구하는지 조용히 지켜보신다. 둘째, 제 2 단계 심판이 내리는 과정도 비슷하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통해 인간의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숨어있는지, 곧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지 아니면 돈과 명예와 안전을 구하는지 지켜보신다. 

B.   마가복음 13장은 제 1 단계 심판에서 제 2 단계 심판으로 넘어가는 역사의 전환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작한다.  3-9절을 통해서 예수님은 난리와 전쟁의 소문, 그리고 사람들이 믿는 자들을 공회에 넘겨주는 일 등은 직접 제 2 단계에 관련된 사건들이 아니고 제 2 단계 심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라고 꼬집어 지적하신다.  따라서 사도들의 복음전도와 이를 반대한 유대교의 핍박은 예루살렘의 함락에 앞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C. 제 2 단계 심판, 곧 환난 시기에 완전히 진입하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피난하라는 마지막 신호를 주신다.  예수님은 이 신호, 곧 “멸망의 가증한 것”이무엇인지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이 신호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D. 제 2 단계 심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약속을 믿는 믿음, (2)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의지, (3) 타인을 용서하는 관대와 관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환난과 핍박의 성격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난 2000년간 있었던 각종 종교탄압들을 통해 이미 익히 잘 아는 바다.  깨끗한 양심, 재물과 안전 – 이 둘 중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 이것이 모든 핍박의 핵심관건이다. 

E.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제 1 단계 평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이 귀하고 촉박한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조용히 동행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돈걱정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현대인의 강박관념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기도로 연결되고 하나님을 통해 용기와 힘을 얻는 경험을 매일 해야 한다.  화잇부인은 [정로의 계단](생애의 빛)에서 기도의 생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신다.  “비록 우리의 주위가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올림으로 불순(不純)한 망상이나 불신성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막을 수 있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과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문을 열어 놓는 자들은 이 땅의 분위기보다 더 거룩한 분위기 가운데서 행할 수 있을 것이며 하늘과 간단없는 교통을 지속(持續)할 수 있을 것이다.” (99쪽)   평화롭고 풍요로운 이 시대에 이와 같은 기도의 생애를 매일 반복해 경험하는 사람은 환난과 혼란의 노도(怒濤)가 밀려와도, 계속해서 하늘의 거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함으로 약속하신 영원한 축복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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