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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인연합기도인연합

2014 재림기도인연합 국제포럼 

현대진리와 남은무리의 사명 (II)

장병호/삼육대학교 신학과 명예교수-전 신학 대학원장  

  

4. 교황권에 대한 재림교회의 해석과 그 현대적 이해


1) 마지막 때와 교황권


근래에 재림교회 내에서도 예언의 초점을 교황권에 맞추어 가는 전통적인 현대진리 개념을 포스트모던 현대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이며 바른 일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 로버트 우스노우(Robert Wuthnow)가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의 모든 종교, 특히 기독교회는 그간의 근본적인 변화와 결단을 요구해 온 전통적인 가르침, 계율, 종교의례 등에서 벗어나 이미 개인적인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한 취미로 전락해가면서 종교의 정체성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특히 금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이 남긴 가톨릭에 대한 범국민적 호의신드롬은 더 이상 재림교회가 통상적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잘못된 긴 유럽의 과거 역사나 신학적 신앙적 논란거리인 비성경적 교리들이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가톨릭 신앙은 개개인의 내재된 종교성에 어쩌면 현대의 문화적 기호에 맞을 수 있는 보편적인 기독교로 각인되어가고 있으며, 심지어 가톨릭교회가 “더 기독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종교학자들의 말을 부담 없이 인용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교회는 그 고유의 사명이 “요한계시록 14:6-12에 있는 세천사의 기별의 배경 가운데 있는 영원한 복음을 전하여 모든 백성을 제자로 만드는 것” 이라는 대총회의 사명 진술서에 명시된 것처럼, 세천사의 기별, 곧 현대진리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 이상의 중요한 시대적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재림교회의 신학과 교리발전사에서 교황, 또는 교황권을 적그리스도(antichrist)에 적용하거나, 다니엘과 요한계시 록의 종말론적 예언에 포함시켜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윌리엄 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다니엘서 12:4, 9에 나와 있는 “마지막 때”(time of the end)에 대한 해석에서였다.  “마지막 때”라는 표현은 사실상 밀러운동의 모든 선교적 동기가 되었으며, 후천년주의 자들(postmillennialists), 즉 천년 후 재림설의 주장에 반대하는 논쟁에 사용했다. 윌리엄 밀러는 이미 1831년에 “복음전파가 마쳐질 때가 영원의 입구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며, 곧 이때가 투쟁하는 교회의 마지막 상태” 라고 말했다. 밀러는 이 말씀을 해석할 때 18세기와 19세기의 다수의 역사적인 사실들이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특히 일단의 밀러주의 자들과 밀러 자신은 “마지막 때”를 자신의 권력을 교회 위에 두고, 지상의 왕들을 지배하며, 자신의 수익을 위해 땅을 분배한 교황의 권력의 종말로 보았다.  그는 교황권이 불란서혁명 기간 중인 1798년 2월 15일에 불란서 장군인 버티어(Berthier)가 로마에 무저항상태에 입성하여 당시의 교황을 폐위시키고 교황정부를 폐지시킨 후 이태리에 공화정을 선언한 사건을 교황권의 종말로 보았다.  그 후 밀러주의자들은 교황의 포로, 천체 현상, 오토만 터키의 붕괴를 종말의 때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1260일(년)의 끝에 대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다른 묵시관련 구절들이 오랜 역사주의적 해석자들에 의해 역사의 동일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예언적 평형구절로 받아들여졌으며, 다니엘서 2장을 주전 6세기에서 재림 시 까지를 다루는 구속사적 사건 (salvation -historical events)의 상징적 묘사로 보았고, 또 단 7장, 8장, 11장, 12장 역시 동일한 역사적 영역을 다루는 것으로 보았다.  동시에 요한계시록 역시 기독교회가 모든 것을 회복할 때까지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밀러의 해석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다양한 묵시 구절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원수들 사이의 전쟁의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역사에서 두 미운물건들 (abominations)의 박해를 교회 밖의 이교도들의 박해와 교회 내에 교황권으로 보았다. 전자를 첫 번째 미운물건으로 사실상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우상숭배에 빠뜨리지 못했으며, 후자를 사단의 최대의 걸작품으로 교회의 무오성, 마리아 숭배, 때와 법을 변경한 교황권을 세우므로 성공한 두 번째 미운물건으로 보았다.  다니엘 2장을 네 왕국의 출현, 곧, 금머리를 느브갓네살의 갈데아왕국, 메데-페르샤, 헬라, 로마제국으로 해석 했으며, 그 후에 그는 로마왕국과 철과 진흙을 두 미운 물건 모티프, 즉 이교(pagan)와 법왕(papal)이 섞여 있고, 이는 곧 인간의 씨(the seed of man/ 단 2:43), 곧 교회와 정부, 교권과 시민권이 정부에 섞여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단 7장 역시 사자-바벨론, 곰-메데 바사, 표범-헬라, 넷째 짐승-로마제국, 그리고 넷째 짐승에서 두 미운물건 모티프를 가져왔으며, 이 짐승의 열 뿔을 열 발가락과 비교하여 고트, 훈족, 반달에 의해 A.D. 476년에 분열된 10왕국으로 보았으며, 이 10왕국을 밀러는 영국, 불란서,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라베나, 롬바르디, 로마로, 그리고 리치는 열 뿔을 훈족, 오스트로고트, 비시고트, 프랑크, 반달, 수에비와 알란, 블군디, 헤루리, 루기 또는 투링기, 삭손과 앙겔스, 롬바르디로 보았다. 또한 작은 뿔(little horn)을 많은 유럽과 미국의 개신교회 주석가들이 본 것처럼 교황권(papal power)으로 보았다.  밀러 당시에 미국의 주석가들 중 Eliphalet Nott[1804], Joshua L. Wilson, Stephen H. Tyng[n.d.], John Robinson[1843] 등은 모두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들로서 면밀한 성경연구를 통해 요일 2:18의 적그리스도, 단 7장의 작은 뿔, 살후 2장의 죄악의 사람을 모두 교황권으로 보았다.  밀러는 본 해석에서 연일원칙(year day principle)을 “때”(time)에 적용했으며, 한 때는 360일(년), 두 때는 720일(년), 그리고 반 때는 180일(년)로, 도합 1260일(년)로 해석했으며, 그 기산점 을 동로마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가 로마의 감독을 세계의 감독으로 만든 538년으로 보았다. 밀러는 요한계시록 11:2, 3; 12:6, 14; 13:5을 1260일과 두 번째 미운물건과 관련시켜 두 증인을 성경, 곧 신약과 구약으로, 성전 밖 마당을 42달(1260일)동안 짓밟힐 교회로 보았으며, 계 12:6을 여인이 광야로 도망가서 1260일 동안 양육을 받았으며, 동시에 기독교회가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한 박해로, 그리고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압제를 가한 것으로 해석했다.  짐승의 참람된 행동과 42달 동안의 권세(13:5, 6)를 교황권의 참람된 주장으로, 42달을 538년에서 1798년까지로 해석했다. 밀러는 계시록 13장을 교황의 정치적(13:1-10), 교회적(13:11-18)으로 적그리스도(antichrist)로 보았으며, 후에는 첫 짐승을 이교로마로 짐승의 우상을 교황로마로 보았다.  따라서 1798년을 묵시적 예언을 받아들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 해로 받아들여졌으며, 단 12:4의 성취는 불란서 혁명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성취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천체의 징조들(cosmic signs)에 대해 18세기와 19세기 초반에 발생한 일단의 현상에 대해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임박한 세상의 종말 관련 징조로 해석했으며, 그 중 다수의 밀러주의자들은 21절에 있는 큰 환란(the great tribulation)을 이교와 법왕 로마에 의한 박해로 인한 고통으로 간주했다.   


 2) 재림의 때와 2300주야. 

 미국과 유럽에서 19세기 중엽에 역사주의자들의 관심은 이미 불란서 혁명으로 성취된 다니엘서 7장과 1260일에서 아직 미래에 있을 재림으로 인도하는 다니엘서 8장의 2300주야 예언으로 넘어갔다(8:14).  당시에 많은 주석가들이 단 8:14을 연일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문자적 해석으로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 (Antiochus IV, Epiphanes)로 해석하고 있었으나 미국과 유럽의 역사 해석자들은 이 예언의 기산점인 기원 457과 453년 사이에서 시작되어 1843년과 1847년 사이에서 끝날 것으로 확신했다.  이들은 단 8:9-14의 작은 뿔은 이교와 교황로마이거나 이슬람 (Muhamma danism[Islam])으로 해석했다.  특히 복음주의 성직자 였던 캠프벨(David Campbell)은 다니엘서 8장의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해석했는데 그 이유를 작은 뿔이 정치적이기 보다는 악한 세력이고, 또 지역적으로 알렉산드의 네 왕국 중 하나인 시리아(syria)로서, 이곳은 유대인의 성소를 짓밟은 쾌락의 땅(the pleasant land)이며 동시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땅이므로 지역적으로 단 8:9의 작은 뿔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역사주의자들과 밀러는 작은 뿔이 알렉산드 제국이 나누어진 네 왕국 중 하나에서 나오며, 이 왕국은 주전 148년에서 주전 30년 사이에 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며, 모하멧은 주후 622년에 일어났으므로 작은 뿔은 “그리스도 전”(before Christ) 에 존재해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캠프벨의 해석은 단 7장과 단 8장 사이의 통일성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리치가 지적한 것처럼 단 7장은 교황권으로 단 8장은 이슬람으로 해석하는 것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주의자들은 2300주야의 끝을 교회의 정결, 참예배의 회복, 적그리스도 곧 교황의 파멸, 모슬렘 으로부터 예루살렘의 회복, 터키의 멸망, 천년기의 시작, 왕국의 설립, 대속죄일 또는 재림으로 해석했다. 

1843년에 들어와서 개신교회 내의 반 밀러주의 정신 (anti-Millerite sentiment)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밀러 운동에서 이탈하면서 로마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개신 교회(Protestantism)도 바벨론을 구성하고 있다는 개념 이 도입되면서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라는 신학과 외침인 찰스 피치(Charles Fitch)의 설교가 자리잡게 했다. 그는 바벨론을 적그리스도로 정의하면서, 그 누구든지 다윗의 보좌에 앉아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통치(PERSONAL REIGN)에 반대하는 자라고 하였다.  그는 로마 가톨릭을 적그리스도로 본 것은 교황권이 권세를 얻고 교황이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으며, 가톨릭은 자신들의 통치를 영적으로 영속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강림을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인된 그리스도인 세계인 가톨릭과 "기독교분파"(Christian sects)를 반대하는 개신교회가 둘 다 적그리스도라고 말했다.  피치의 두 번째 설교에서 계 18:2에 있는 바벨론의 무너짐을 문맥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로 보았으며, 그들의 압제 정신에서는 개신교회들의 자만심, 세속적 재력과 권력욕에서 적그리스도에 넣었다. 

단 8:14의 2300주야에 대해 클로지어(Crosier)는 밀러와는 달리 그리스도께서 승천 시에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으며, 1844년 10월 22일에 처음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두 국면의 봉사(two phases of ministry)에 대한 성경의 유추적 해석과 표상학적 해석(analogy and typology)을 제시했다. 이것을 클로지어는 새 언약의 참 장막[성소]을 문자적인 하늘 성소로 해석했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 후에 있는 일이며 2300주야의 끝에 성소가 짓밟히고 또 정결케 되는 것이었다.  단 8:11의 성전의 짓밟힘은 로마당시에 로마라는 도구를 통해 있었으며 결코 지구나 팔레스틴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로마는 자신을 만군의 주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자칭했으며, 단 11:30, 31에 깃딤의 군사를 거룩한 언약을 더럽힌 시민과 종교적인 군대(civil and religious arms), 즉 로마와 기독교 사도들이 연합하여 언약을 더럽힌 것으로 보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참람되고, 불경스럽게 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렘 34:16; 겔 20; 말 1:7). 같은 맥락에서 클로지어는 성소를 더럽히고 하늘 성소를 짓밟은 “종교적이고도 정치적인 짐승”(politico-religious beast)과 같은 것으로 봤다(계 13:6; 시 10:2;19; 렘 17:12; 히 8:1, 2). 그는 살후 2:1-8을 중심으로 이 일을 교황의 명칭(titles)을 “주 하나님 교황”(Lord God the Pope), “거룩한 아버지”(Holy Father), “교 회의 머리”(Head of the Church)로 부르며, 하나님의 모조 성소(counterfeit 'temple of God')에 앉아 예수 께서 행하시는 것을 자신도 행한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1843-44 겨울에 제칠일 침례교인 라첼 오크스(Rachel Oakes)가 뉴헴프셔의 워싱턴에 있는 밀러파 재림교인 들에게 안식일 기별을 소개했으며, 감리교 재림신자였던 프레데릭 휠러(Fredrick Wheeler)와 여러 명이 1844년 봄에 북미에서 첫 안식일준수 재림교인이 되었다. 그 해 늦게 자유의지침례재림교인이며 성직자였던 토마스 프레 블(Thomas M. Preble)이 안식일을 받아들이고 곧 자신의 새로운 확신을 출판물에 실었다.  자신의 성경 강해에 안식일준수는 여전히 유효한 십계명의 준수이며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영원한 표(everlasting sign)이며,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 날을 첫째 날로 변경했으며, 역사적으로 단 7:25의 작은 뿔이 때와 법을 변경할 것이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일요일을 준수하는 자들은 교황의 일요일 준수자들(Pope's Sunday Keepers!)이며, 하나님 의 안식일을 파괴하는 자들(God's SABBATH BREAK ERS!!!)로 보았다. 

1851년에 안식일준수 재림교인들은 종교통합운동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비 근본적인 것들(nonessentials)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essentials)에서 하나 되도록 기도 해야할 주제는 둘째 천사의 기별로 완전히 결정지어 졌다고 했다.  1852년에 제임스 화잇도 이에 동의 했으나 이들의 연합은 인간이 만든 신조로 회심자들을 동화시키고 큰 성 바벨론의 혼란이 성취되는 것이므로 비 재림교인들이 이에 하나 되는 것에 비판했다.  1870년에 코트렐은 세 종교통합운동을 구분하면서 첫 운동은 로마 가톨릭교회가 기독교통합회의(Ecumenical Council)를 소집하여 연합의 결속으로 교황의 무오성 (infallibility)을 선언한 것이며, 둘째는 개신교 교회 협의회(Protestant Ecumenical Council)가 즉각적으로 교회연합을 제안한 것이다.  

1851년에 셋째 천사의 기별의 또 하나의 의미심장한 발전은 계 14:9-11에 대한 이해를 계 13장의 상징주의 배경의 해석의 열쇠를 가진 앤드루스의 “짐승과 그의 우상”(the beast and his image)에 대한 해석이다. 앤드루스는 계 14:9-11의 짐승을 단 7장의 넷째 짐승과 동일시한 계 13:1-10의 짐승과 같이 본 것은 1) 첫째 요한 당시의 세 짐승들(제국들)은 지나갔고 단지 다니엘의 넷째 짐승만 요한에게 보였기 때문이며, 2) 둘째는 두 짐승들이 다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후에 앤드루스는 로마제국의 보좌[수도]가 콘스탄티누스 에 의해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로마 자체는 후에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에 의해 교황들(Popes) 에 주어졌다는 것을 부가했다.  앤드루는 계 13장의 짐승은 넷째 짐승으로부터 교황권의 형태(Papal form)를 갖췄는데, 그 이유는 보좌와 권세를 이교로마[계 13:2]인 용에게서 물려받았기 때문으로 결론지었다. 

1860년에 와서 국가의 법에 교회의 재산이 보호를 받고 또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안식일준수 재림성도들이 공식적인 조직을 가지게 되자 666을 두 뿔 가진 짐승으로 믿고 있었던 많은 신자들의 반대에 봉착했다. 제임스 화잇에 따르면 “반대자들은 짐승의 수를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분파의 이름(sectarian names)도 거절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  반대자 중 한 사람이었던 코트렐은 법인을 갖는 것은 두 뿔 가진 짐승(two-horned beast)의 이름을 갖는 것이며 정교 분리의 원칙을 어기고 교회의 보호를 위해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에 대해 제임스 화잇 은 666은 두 뿔 가진 짐승이 아니라 교황권 짐승(the papal beast)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우라이야 스미스는 666이 계 13의 첫 짐승을 언급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여전히 불확실 성이 있다고 했지만 1865년에 재림교회가 일반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1832년에 붙여진 The Reformation이라는 익명의 작품에 우리가 지금까지 짐승의 수로 제안해 혼 것 중에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교황이 자신에게 적용한 참람된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교황은 보석으로 글자가 새겨진 주교관을 쓰며, 교황의 직명은 비카리우스 휠리 데이[Vicarious filii Dei], 곧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Viceregent of the Son of God]로서 666의 숫자의 값을 지니고 있다. 그 수는 V-5, I-1, C-100(a와 r은 숫자로 사용하지 않음), I-1, U-5(이 전에는 V와 같은 수였음), (s와 f는 수로 사용하지 않음), I-1, L-50, I-1, I-1, D-500, (e는 수로 사용하지 않음), I-1. 이 모든 수를 더하면 666이 된다고 했다. 

상기의 해석들은 사실상 전적으로 초기의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 찾아낸 해석체계가 아니다. 이미 많은 기존의 성경해석가들의 해석들을 참조한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불법의 사람(살후 2), 바다에서 올라 온 첫 번째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두 번째 짐승(계 13), 음녀와 바벨론(계17장), 붉은 빛 짐승의 일곱 머리 등을 교황권으로 해석한 비 재림교회 주석가들이 많다. 그 몇을 언급한다면 다음과 같다. 말르틴 루터(1522), 필립 멜랑히톤(1543), 단드레아스 오시안더(1545), 마티아스 플라시우스(1556), 하인리히 벨린저(1557), 조지 니그리 누스(1570), 데이빗 키트류스(1572), 요한 훈커(1558), 토마스 크램머(1582), 존 베일(1550), 존 제웰(1562), 데이빗 파류스(1618), 휴거 크로티우스(1640), 헨리 하몬드(1653).  이 들은 대부분 진술된 주제들 중, 불법 의 비밀, 첫 짐승, 음녀, 바벨론에 대해서는 교황권으로 해석했으나, 마르틴 루터(1522)는 그 중 작은 뿔은 교황권과 오스만 터기로, 계 13장의 첫 짐승은 제국로마로, 계 17장의 일곱 머리는 해석을 유보했다. 멜랑히톤(Philipp Melanchtohon)의 경우는 불법의 사람, 바벨론에 대해서는 교황권으로 해석했으나 요한 폭스(1587)와 데이빗 키트류스는 불법의 사람을 로마의 감독으로, 계 13장의 첫째 짐승을 제국로마로 보았다. 이들 중 계 13장의 첫 짐승과 둘째 짐승에 대해 약간의 차이를 두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데이빗 키트류스는 첫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폭스는 이교로마로, 존 나피에르 (1593)는 라틴인으로, 블라시우스 비에가스(1601)와 코르넬리우스(1620)는 미래의 적그리스도로 해석했다. 둘째 짐승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오시엔드는 교사들로, 베일은 고위 성직자들로, 폭스는 로마의 감독으로, 라피데는 선구자 들로, 토마스 브라이트마스(Thomas Brightmas/ 1614) 는 마지막 교황권으로, 크레티우스는 이교예배로 해석 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대부분 성경의 가르침에서 떠난 종교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백성을 핍박하는 종교주체들로 해석했다. 

특히 1798년에서 1844년까지의 주요 비 밀러주의자들 (non-millerite)의 해석원칙에서 요일 2:18의 적그리스도, 단 7장의 작은 뿔, 단 11:44의 북방 왕, 살후 2장의 불법의 사람을 교황권으로, 작은 뿔을 삼중면류관으로 해석한 학자는 우잘(1795)이며, 수많은 학자들과 주석가 들, 특히 벨크넵 제르미(1798), 베이컨 저지(1799), 복음주의협회(CEM/ 1803-15), 자유복음해럴드(1808), 드와이트 티모디(1812), 조슈아 윌슨(1828), 멕코클레 셈 (1830) 브라운리 움(1834), 존 로빈슨(1843)이 요일 2:18의 적그리스도와 단 7장의 작은 뿔, 그리고 살후 2장의 배도, 곧 불법의 사람을 교황권으로 해석했다.  특히 윌리엄 밀러의 19세기 초중반의 재림운동 직전에 적어도 50명의 주요 비 재림운동 관련자들이 이 방향으로 그룹을 이루듯이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교황권(papacy)에 적용했으며, 극히 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하고는 다니엘 2장과 7장의 네 제국들을 연속적인 나라들로, 작은 뿔을 극히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교황권으로 해석했으며, 영국의 대분의 주석가들은 1260년이 불란서 혁명으로 성취될 것이며, 하나님의 왕국은 재림 시에 세워질 것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개신교 저술가들은 불법의 사람(Man of Sin)을 교황권으로 보았다.  따라서 재림운동 초기의 밀러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해석이 성경의 전통적인 해석에서 지나치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초기 재림교회의 역사적 자료를 중심으로 교황권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들의 연구들이 지금의 재림교회의 공식적인 교리와 예언해석에 기초가 되었다. 이 후 예언해석과 관련된 다수의 서적들과 논문들이 나왔다. 근래에 이르러 교황권에 대한 교단의 공식적인 진술과 연구발표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비 재림교인들을 위한 답변형식의 첫 책인 Seventh-day Adventists Answer Questions on Doctrine[QOD]이다.  이 후 SDA Bible Commentary, Symposium on Daniel, Symposium on Revelation, I, II,  대총회성경연구소(BRI)를 통해 이와 관련된 서적과 논문들이 출간되거나 발표되었다. 

재림교회는 공식적으로 교황권에 대해 계 13:16, 17의 안식일과 짐승의 표(mark of the beast)와 관련하여 대답한다. 즉 QOD의 질문18에서 재림교인은 안식일 문제를 짐승의 표와 연결시키는 것과 그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그 답을 요약하자면 재림교회는 성경의 예언이 마지막 날에 교황권이 권위의 표를 가지고 부활할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짐승의 표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마지막 대 종교적 위기(the last great religious crisis)와 연결되어 부과될 것을 믿으며, 짐승의 표를 교황권이나 로마교회의 명령을 받는 것과 연계시켜 해석했다. 

재림교회는 우선적으로 작은 뿔에 대한 주변의 질문에 명쾌히 답한다. QOD는 다니엘 8장과 관련하여 24번째 질문인 1) 2300주야(년), 2) 로마를 말하는 수염소의 현저한 뿔 넷 중 하나에서 나온 작은 뿔, 3) 성전이 짓밟히는 일과 그 후 성전이 정결하게 되는 문제에 대한 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선 큰 뿔, 현저한 뿔 넷, 그 중 하나에서 나온 심히 커진 작은 뿔은 이교 로마와 거기서 발전한 법왕로마로 제시하며, 단 2장, 7장, 8장을 종합해볼 때 8:9의 작은 뿔은 이교와 법왕 로마를 둘 다 상징한다. 그 후에 단 8:10-13, 23-25; 11:31과 12;11에 등장하는 작은 뿔은 둘 다 이교로마와 법왕 로마(pagan and papal Rome)를 상징한다.  2300주야는 년(years)으로, "매일 드리는 제사"(daily)를 히브리서 8장과 9장을 배경으로 “매일”(tāmid)을 성소와 연결 지어 드려지는 정규적으로 매일 드려지는 성소봉사(sanctuary service/ 단 8:11-13; 11:31)로 “더럽히는 범죄”는 매일 드리는 봉사를 멈추게 하고 비효과적으로 하는 이교 로마와 교황로마를 나타내는 것이 확실하며(surely),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로마 군대에 의해 지상의 성전이 AD 70년에 파괴되는 것에 적용했다(마 24:1-3, 15-20; 눅 21:20). 그러나 다니엘서 11:31은 단 8:11, 13과 평형을 이루며 둘 다 성소와 그 파괴를 언급하고, 매일 드려지는 제사가 제하여버리는 것에 적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단 8:13, 14을 부분적으로 예루살렘에 적용시키셨으므로, 재림교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1)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버리는 것은 AD 70년에 이교로마(pagan Rome)에 의해 그 봉사가 영원히 정지되었고(단 8;11, 13; 11:31 참조; 마 24:1-3, 15-30; 눅 21:20과 비교하라), 2) 매일 드리는 제사가 법왕 로마(papal Rome)에 의해 혁신적인 사제의 중보기능, 미사의 희생제사, 고백과 마리아 숭배 등이 성공적으로 하늘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애에서 비활동적이거나 제하여버린 것을 나타낸다고 보았다(히 7:25; 8:1-5; 9:24 등 참조).  “심히 자란” 뿔을 로마에 적용하는 것은 로마가 단 8장을 구체적으로 성취한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았으며(8:10), 수 세기 동안 압제자들, 네로, 도미시안, 디오클레시안 등을 통해 박해하였고, 우리가 그리스도로 믿는(행 3:15; 계 1:5) “만왕의 왕”을 대적하였으며(8:25), 로마 병정들이 그분을 못 박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고, 무덤에 넣어 로마인장(Roman seal)으로 인봉했다. 후에 로마는 법왕로마 형태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매일의 중보(tāmid)가 행해지는 하늘의 성소를 지상의 수많은 제단들에서 드려지는 대체 제사[미사]를 행하므로 짓밟고 훼손했다(히 7:25; 요일 2:1). 가견적인 교황의 권위가 성령으로 인도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했다(요 14:16, 17; 16:7, 13). 이 일을 통해 그리스도와 예배자들 사이를 인간의 장벽으로 막고, 믿음올 얻는 구원을 공로로 대치시켰다.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사실상 짓밟히고 추방되었다(cast down).  즉 QOD는 작은 뿔이 교황권과 로마 가톨릭의 종교형태임을 분명히 했다.

재림교회가 교황권과 로마가톨릭교회를 작은 뿔, 불법의 아들, 첫째 짐승, 바벨론에 적용한 것은 1992년에 출간된 대총회 산하 다니엘과계시록위원회(Daniel & Revelation Committee/ DARCOM)의 시리즈 2권, 6권, 7권 을 통해 다시 한 번 재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몇 연구주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므로 지금까지 제시된 예언 해석의 연구방향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요약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1) 짐승의 표 (The Mark of the Beast). 이미 상기에 언급된 것처럼, 과거의 많은 주석가들이 짐승의 표를 로마교회(church of Rome)로 해석했지만, 사실 재림교회는 이 보다 더 앞서 나아가 로마 공동체(Roman Communion)가 오랫동안 기독교회에 영적인 문제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중요한 증거로 사용했던 일요일 준수를 십계명의 일곱째 날 안식일에 상반된 일요일을 마지막 때에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어떤 조직의 힘으로 제시하고 있다. 재림교회의 분명한 입장은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이 “표”를 받도록 강제하며(계 13:1-10), 그 짐승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넷째 짐승(단 7:8, 25)의 머리에서 나온 사람의 눈과 입을 가진 작은 뿔(little horn)이며, 바울이 예언한 “불법의 사람” “불법한 자”(살 후 2:1-8)와 동일하며, 이는 이미 초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제시한 것으로, 곧 “적그리스도”(antichrist)로 간주한다. 종교개혁 이전에 많은 저자들은 적그리스도를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의 대중적인 해석에 기초가 된 어떤 한 개인(a single individual)에게 적용하고 있으나 종교 개혁자들은 이를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에 오랫동안 있었던 어떤 교회적 제도, 곧 교황권으로 본다.  재림교회는 이런 구절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분석을 존중히 여기며 짐승의 표를 예언 해석의 두 면에서 교황권으로 본다. 1) 작은 뿔이 “때와 법을 변경할 것”(단 7:25)은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에 관련된 것으로 예견하며, 2) 계시록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계 12:17; 14:12), 또 거절과 죽음의 형벌 하에서 마지막 때의 표를 받도록 압력을 받게 될 것을 특징짓고 있다. 역사는 로마 공동체가 서방에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매우 초기에 안식일에 반대되는 일요일의 신성성을 받아들이고 강제한 무수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예언적 평가는 옳으며, 교황권은 십계명, 특히 넷째 계명, 그분의 율법에 하나님의 인이며 창주주로서의 자신의 권위의 표인 넷째 날을 특히 변경하였다. 재림교회에 들어온 안식일을 변경하여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부류의 영적 상태(spiritual condition)를 담고 있다. 그분의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하나의 표로 진정한 안식일 준수가 주는 의미인 것이다(출 31:13; 겔 20:12). 마지막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여부는 그들이 유예의 기간 동안에 그들이 계발한 품성의 상태를 나타내게 될 하나님의 인이나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으로 결정될 것이다. 


 2) 바벨론: 적그리스도(Babylon: Anti-Christian Empire)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의 유명한 학자들은 음녀 바벨론(계17장)을 실제로 일곱 언덕에 위치해 있으면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도미시안 황제에 이르는 일곱 선별된 왕조에 의해 통치된 고대 로마도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음녀/짐승 바벨론을 1세기나 마지막 때에 적용시키는 과거주의와 미래주의적 해석을 섞기도 한다. 이런 견해는 성경적 배경과 예언적 자료에 맞지 않다. 과거주의적 역사비평견해 (preterist/ historical-critical position) 는 계 13장과 17장에 나오는 관련 짐승을 묘사하고 있는 얘기들과 맞지 않다. 실제로 계시록 12장과 13장은 음녀/짐승이 상징하는 것을 정의하는데 기초가 된다. 계 17장의 바벨론은 어떤 정치적인 실체가 아니라 종교적인 실체(religious entity)이다. 신약의 바벨론은 마지막 일곱 재앙과 아마겟돈으로 인도하는 마지막 사건들 가운데서 주요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온건 미래주의적 견해(moderate futurism) 는 다니엘서가 계시록을 위한 주요 예언적 모델이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다니엘의 일관성/역사의 독특한 양식이 마지막 때에 정점을 이루며, 일관된 역사주의적 관점이 계시록의 구조에 녹아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회복에서 초기의 배경과 마지막 때의 절정 사이의 기독교 역사의 묘사에는 갭이 없다. 따라서 성경저자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계 13장)과 작은 뿔(단 7장) 사이에 강한 연결을 이끌어낸다. 두 예언은 동일한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계시록 12장과 13장은 음녀 바벨론의 직접적인 배경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신약의 음녀(계 17장)와 구약의 고대 이스라엘의 음녀 사이의 표상학적인 연결은 음녀 바벨론이 정치적 로마(political Rome)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깨고 그의 참 제자들을 박해하여 마지막 때의 사건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데로 발전한 예언된 한 배도한 기독교(a predicted Christian apostasy)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3) 일곱 머리: 로마제국의 황제들을 상징하는가?  계시록의 이상에서 세 번이나 상징적인 일곱 머리와 열 뿔이 나온다(12장, 13장, 17장). 처음과 셋째는 붉은 빛으로, 둘째는 표범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고, 둘째는 뿔에 쓰고 있으며, 그리고 셋째는 머리나 뿔에 면류관이 없다. 이것에 대해 전통적인 과거주의적 해석은 둘째나 또는 표범같은 몸을 가진 짐승(leopard-bodied beast)은 로마제국으로, 그것의 일곱 머리(seven heads)는 첫 세기부터 기독교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등장한 로마의 통치자들로 본다. 따라서 표범 같은 짐승이 하나님을 참람되이 대하고 그분의 백성을 박해하는 것은 여러 로마의 통치자들 하에서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성경의 실제적인 자료를 과거주의에 적용시키는데 큰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짐승의 정의에 대해 예언은 그 세력이 요한의 때에서 볼 때 미래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로마의 통치자들은 1세기 동안에 7명이 아니라 11명이었으며 , 주요 과거주의자들의 해석이 요한을 성경자료가 말하고 있는 여섯 번째 머리 하에 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범의 네 머리(단 7:6; 참고 8:8, 22)는 “나라들”을 상징했으며, 계시록의 일곱 머리 짐승은 나라들이나 세계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예상할 수 있다. 계 17:9에서 일곱 머리는 “일곱 산”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구약에서 산들은 “국가”나 “제국”을 상징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나(단 2:34-35, 44-45; 렘 51:25) 결코 개인적인 통치자들에게 사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개개인의 교황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표범 같은 짐승은 요한의 시대로부터 미래의 실체이며, 일곱 머리 짐승(계 17:9, 10)을 “일곱 언덕”과 “일곱 왕들”과 그 중 하나가 상처를 입었다가 나음을 입었으며, 더 나아가 666이 그 짐승을 정의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은 계시록의 일곱 머리와 유사하며, 17:9, 10의 두 번째는 “왕들”은 “지도력” “나라들” 또는 “제국들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의 충분한 증거의 도움으로 첫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일곱 머리는 아시아의 로마제국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애굽,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마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 하나는 요한의 시대에서는 미래에 있을 것이었다.  666에 관해서는 계 13:18이 짐승의 수, 곧 사람의 수라고 말하고 있는바, 이는 배경 속에서 표범 같은 짐승을 말하며,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한 왕국을 묘사하며, 이는 요한의 시대에 존재했던 세력을 포함하여 구약의 예언에서 주어진 왕국들이며, 더 나아가 하나는 요한의 시대에는 미래에 일어날 한 왕국임이 분명하다. 


 4) 근대 교황: 주장과 권위(The Modern Papacy: Claims and Authority)  70년간의 극한 이념 대결 후에 공산주의 러시아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와 로마가톨릭의 수장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가 1989년 12월 1일에 바티칸에서 크레믈린과 바티칸 사이에 외교관계를 수립하는데 동의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점진적으로 성숙해 온 때의 징조이자 약속이 무르익은 징조”로 회의를 소집했다.  세계의 도덕적 양심(moral conscience of the world) 으로 교황권에 대한 관심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하인즈는 로마가 “수 세기를 생각한다”는 것을 관찰하고 현재의 교황의 후계자들은 일관된 계획과 추진의 결과로 보고 있다. 현대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에서 배제되고 이태리 내의 자신의 영토를 잃어버린 후(1870) 교황청 지도자들은 교회의 잃어버린 권력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전략으로 돌아섰다. 교황은 제일 먼저 영적인 권력(spiritual forces)을 개발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교황의 이미지를 사랑받고 존경받는 “성부”(Holy Father)로 모든 가톨릭 세계의 눈이 교회생활에 중심에 있도록 하여, 그의 말과 훈시를 두려움과 순종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교황의 무오성(infalibility)은 제1차 바티칸 회의에서 교회를 강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결의했다. 교황의 또 다른 전략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이상이다. 교황은 세계의 정치, 사회적 문제, 의료, 과학, 윤리, 종교 등등 국가적 사고를 교회의 관점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미소 짓는 사랑의 얼굴로 세상을 향했으며 교회의 위치를 인류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제2차 바티칸 공회를 소집했으며 교회를 현대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갱신시키는 일을 했다. 그는 공산 세계에 뿐만 아니라 개신교회의 “분리된 형제들”(separated brethren)에게 손을 뻗었으며, 이 일을 위해 후에 교황들, 곧 바오로 6세와 바오로 2세는 많은 선교여행을 다녔다. 1988년 가을에 바오로 2세는 “세계의 도덕적 양심”과 “세계의 목자”가 되기 위해 당해까지 40번의 여행을 했다. 그러한 지구적 전략(global strategy)의 결과로 교황권의 영향력은 중세에 도달했던 그 어떤 때 보다 더 높고 넓게 성공의 정점(a pinnacle of success)에 도달했다. 미국은 이미 바티칸에 대사를 두고 있으며, 현재의 교황은 “그가 되기 원하는 인간의 권리와 평화의 챔피언, 도덕적으로 신뢰받는 지도자, 멋진 미사, 미디어의 슈퍼스타, ‘메시아와 거의 흡사한 자’로 세계의 희망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교황권이 실제로 변했는가?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장 강력한 주장은 가장 오랫동안 견지해 온 교리에 근거한다면 반복적으로 성경학도들에게 들려지는 것은 “로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Rome never changes)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에 대해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저서 대쟁투에서 이를 간파하였다. “개신교도들은 일요일을 준수하는 사이에서 로마교의 도움을 받고자 하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별로 알지 못한다. 그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로마교는 그의 세력을 다시 구축하고 그의 잃어버린 최상권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을 관철시키고 있다.”  요약하자면 교황권의 근대역사는 세계의 힘(world power)으로 경이적이고 초지일관되게 마지막 때의 예언의 색깔을 더해가고 있다. “...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3, 8) 


 5) 18세기-19세기: 교황의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힘의 쇠락: 오스트리아 국왕 조셉 2세(1780-90)가 베니스 총독궁을 방문했을 때, 안내자에게 페데리고 주카로가 그린 “교황 알렉산더 3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바르바르사[프레데릭 2세]”의 그림 앞을 빨리 지나가도록 요청 하였지만, 결국 그림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고, 설명을 듣고 난 후 아주 과묵한 말투로 미소를 지으며 “그 때는 지나갔다”(Tempi passati/ those times are passed)고 말했다. 18세기 말은 교황권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다. 14세기의 교회의 “바벨론 포로”(Babylonian captivity) 기간, 15세기의 회의주의(conciliarism), 16세기의 종교개혁, 17세기와 18세기의 교황권 제한주의와 계몽주의를 통과하면서 교황권은 한 때 중세기에 풍미했던 세속적인 영향력과 종교적인 권위가 많이 상실되었다. 1773년에 클레멘트 14세는 예수회를 해체시켰고, 1782년에 요셉 2세는 비오 6세의 반대에도 교회개혁을 단행했고, 1793년에는 불란서혁명이 기독교를 폐쇄시켰고, 1798년에는 혁명군대가 교황청국가(Papal States)를 접수하고 로마공화정(Roman Republic)을 선언했다. 비오 6세(Pius VI)가 발렌스에서 사망했을 때, “교황청은 가장 심각한 굴욕의 고통을 당했다....거의 패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혁명은 또한 교황권에 상처를 입힌 것처럼 보였고, 저 먼 20세기까지는 회복되기를 원치 않았다.”  교황 비오 6세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이라고 불려졌다. 나폴레옹은 “낡은 기계는 저절로 해체될 것이다.” 라고 말했고, 키에르케골(Kierkegaard)은 교황의 영토가 1801, 1814년에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적절하게도 “교황들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가톨릭의 교황의 종교적인 권위는 계몽운동, 자유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등에 영향의 지배를 받아야했고, 그 결과 계몽운동으로 인한 사고의 해방, 자유주의의 결과로 생긴 개인주의, 포이에르 바흐, 칼 막스, 니체에 의한 철학적 무신론주의 의 결과로 종교에 대한 적개심, 세속주의로 인한 현대인의 무관심과 세속화는 기독교와 가톨릭의 장벽에 큰 균열이 가게 만들었다.   


 6) 스페너(Ph. J. Spener)는 17세기 말에 미래를 좀 더 다르게 보았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에 기록하기를 “내가 확신하기로는 로마인 바벨론은 마지막 심판이 덮치기 전에 이 전의 모든 권세를 회복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세력에 겁을 먹고 그것의 잔인성에 두려워 떠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200년 전에 그들이 졌던 멍에를 다시 지도록 허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라고 했다. 첫 재림교인들이었던 H. 에드손, J. 베이츠, J. N. 앤드루스, U. 스미스는 첫 번째 짐승의 “죽게 되었던 상처”(계 13:3)-다니엘에 “작은 뿔”(단 7:25)로 상징된 동일한 세력-에서 1798년에 종교개혁의 사건들에 의해 이미 준비 되었던 로마의 몰락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죽게 되었던 상처의 “낫는 것”을 스미스는 1800년에 비오 7세의 즉위식에서, 베이츠는 1815년에 회복에서, 앤드슨은 미래 어느 때를 예상했거나 종교개혁시기에서 마지막 때 사이의 기간에 회복될 것으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예언해석의 기초에 스페너처럼 로마의 "르네상스" (Renaissance of Rome)를 예상했다. 이것이 후에 재림 교회의 해석에 기초가 되었다. 

콘라디(L. R. Conradi)는 교황권의 “치료”의 과정을 19세기에 그것의 부상과 교황의 무오성의 선언과 독일의 비스마르크와의 문화적 갈등에서 승리한 것에서 보았으며, 불루마이어(J. Vuilleumier)는 레오 13세 시대로부터 20세기와 그 이상에서 부상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스파이설(W. A. Spicer)은 자신이 살던 당시로 보았고,  R. A. 앤드슨은 뭇소리니와 바티칸이 1929년에 체결한 라테란조약(lateran Treaties)을 언급했다.  재림교회주석은 라테란조약을 회복의 선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다루면서 아직 그 일을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계 13:8, 12).  C. M. 맥스웰은 1929년을 언급하면서 세계의 가톨릭의 영향력이 회복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요한 23세에서 바오로 2세에게로의 새로운 교황들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부가했다. 미국의 대사를 바티칸에 보내라는 투루만의 제안이 아무런 반대로 없이 1984년에 로날드 레이건이 실행했다.  재림교회가 교황권의 회복예언에 기초를 둔 통찰은 다음에서 가져왔다. 1) 계 13:1-10의 짐승은 단 7:19과 8:20의 작은 뿔과 같으며, 2) 계 13:5-7의 42달 언급은 중세와 반종교개혁 시기를 말하며, 3) 계 13:3과 4절은 42달 끝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들에 대한 객관적인 기대감이며, 4) 3절, 4절, 7절, 8절은 평형을 이루어 42달 후의 때를 언급하며, 5) 9절과 10절은 3절과 평형을 이루어 “상하여 죽게되었던 것”을 설명한다. 1798년은 단지 부분적인 성취이며 마지막 심판에서 최종적인 완성을 본다. 6) “상하여 죽게되었던 것”은 머리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3절) 짐승 자체이다(12, 14절). 따라서 “낫는 것”도 머리뿐만 아니라 짐승 전체이다(14절). 이런 성경적 진술을 토대로 “나음을 입는 것”(healing)은 다음의 여러 국면으로 나타났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참람된 말을 포함하여 큰 말을 하며, 둘째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들을 큰 세력으로 지배하며, 셋째 성도들을 대적하는 전쟁에서 그들을 이기며, 넷째 전 세계가 경이로워하며 경배를 받는다. 


 7) 1800-1958년은 비오 교황들의 세기(Pius VII-XII):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교황들은 비오 9세, 레오 13세, 비오 12세이다. 이 시기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교황의 세속적 권력에 대한 앙갚음 목적으로 사상과 행동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부풀어 올려 그들의 영적권력을 위한 터무니 없는 주장들을 만들어냈다. 그레고리 7세는 딕타투스 파파에(Dictatus Papae), 즉 로마의 감독만이 세계에서 합법적인 오직 한 사람이며, 그의 이름도 세계에서 유일하며, 그만이 감독들을 임명하고 해고시킬 수 있고,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노센트 III세는 자신의 강론과 글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 하나님 보다는 못하나 사람들보다는 높은 바로의 하나님이며, 모든 기독교의 감독이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전 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치할 권한을 위임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보니파스 8세는 교황칙서에서 가톨릭교회만이 믿음을 순종으로 받고 유지하고 있으며, 가톨릭교회 밖에는 구원도 죄의 용서도 없다는 우남쌩탐(Unam Sanctam)을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에 아무도 허물 수 없는 “가톨릭 진리”가 선언되었는데, 곧 하나님이 보여주신 불변의 교리(irreformabilis/ immutable Dogma), 교황의 전 지구에 대한 재판수위권, 교황의 무오성과 믿음과 도덕의 문제 결정권 등으로 성경과 전통을 넘어 교황에게 제어할 수 없는 권한이 위탁되었다.  교황에게 죄가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죄가 없는 것과 같으며, 교황이 생각하는 것은 그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생각하시는 것이다.  바티칸의 죄수 시기(prisoner of the Vatical/ 1870-1929)와 약한 교황의 시기(Pianic Era/ 1815-1929)를 청산하고 이제는 명실 공히 세계의 최고의 영적 지도자요 외교의 수장으로 그레고리 7세, 이노센트 3세, 보니파스 8세는 세계 황제와 왕들을 직접 통치하는 권한(potestas directa papae in temporalibus)을 가졌 다고 주장했다. 회람교황(encyclical Pope)이었던 레오 13세는 로마의 권위는 세계의 모든 정부와 국가들 위에 있다고 선언했으며, 그 후 레오 13세는 영적인 세계 통치자로 행세하기를 원했다. 협약/화친교황(Concordat Pope)이었던 비오 11세와 서구교황(Western Pope) 비오 12세는 자신의 권위를 독재자들을 지원하면서까지 직접적이고도 획기적으로 시행했다. 로마는 무쏘리니의 아비시니안 전쟁(Mussolini's Abyssinian War)을 “성전”(holy war)라고 선언했으며, 교회는 그와 파시스트정권 이태리를 위해 기도하도록 요청했다. 비록 가톨릭교회는 1933년 이 전에는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에 반대했었지만 시대가 급격히 변하는 때의 징조로 이해했다. 그 한 예가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직전에 국가 사회주의정당(Socialist Party) 지원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 후 교회는 “신실한 가톨릭신자 아돌프 히틀러에게 투표하라!” 고 독려했다. 로마는 소규모의 독재자들(Dollfuss, Horthy, Salazar)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프랑코의 원정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추기경 폴하버 (Faulhaber)에 따르면 로마가톨릭은 국가민족주의와 파시즘이 공산주의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교황의 “대 목표”였다.  교황청은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와 미국의 부상(浮上)은 비오 12세로 하여금 미국에 모든 희망을 걸게 만들었으며, 미국이야말로 교회의 세속적 무기(secular arm)가 되도록 했고 그 후 미국은 교황의 의지대로 가장 큰 가톨릭 국가가 되었으며, 비오 12세가 사망한 후 미국은 첫 가톨릭 대통령으로 케네디를 선출했다.  미국은 분열된 개신교회와 함께 세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로마가톨릭은 미국을 "병기창"(armory)으로 생각했다. 

재림교회가 가톨릭에 대한 이해를 과거의 역사와 함께 생각하는 것은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중세암흑기와 반 개혁운동 시기에 로마가톨릭, 곧 교황로마는 영적권력과 세속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힘을 다 사용하고 승인했다. 종교재판과 십자군운동을 통해 이교도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까지도 복종 시키고 짓밟았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한 통계에 의하면 6000-7000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인들과 이단 들을 죽였다고 한다.  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이런 박해를 위대한 신학자들이 정당화시켰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이단들은 파문은 안 되지만 합법적으로 살해당할 수는 있다고 했으며,  벨라르민(Bellarmine)은 이단들이 더 많이 유혹할 것이므로 이단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가능한 한 속히 준비된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1864년에 비오 9세는 자신의 교서요목에서 정교의 분리, 종교의 자유, 사회주의, 자유주의의 전염병, 그리고 성서공회에 대해서 반박했다.  레오 13세는 현대 개혁들, 현대 철학들, 그리고 “유행성 전염병”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무신론주의는 소위 종교개혁의 부산물들이라고 정의했다.  개신교에 대해서도 그는 개신교야말로 “무신론으로 가는 첫 길”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특히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만들어진 신앙과직제위원회 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1919년의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총회에 참석 요청을 받은 베네딕토 15세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가톨릭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소환장으로 대답했으며, 비오 11세는 1928년에 더 신랄하게 1927년에 열린 로잔세계총회에 대답형식으로 교황교서(Mortalium animos)에서 기독교의 통합은 다른 모든 교단들이 초기의 배도로부터 하나의 참 그리스도교회(one true church of Christ)로 돌아오는 길 외에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권장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후 종교통합운동에 관한 가톨릭의 견해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에게는 기독교란 가톨릭을 의미하며, 갱신(renewal)은 회복 (restoration)을 뜻하며, 회복이란 교황과 성직계급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 성직계급 정치를 주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개인적으로 사도 베드로에게 최고의 판결권을 위탁하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내용만으로도 종교통합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과 관련된 그 어떤 논의와 방향도 사실상 로마 가톨릭교회는 가톨릭형태로, 가톨릭을 향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제시된 바에 따르면 교황은 이 세계교회, 곧 로마 가톨릭교회를 통해 멀지 않은 장래 어쩌면 셋째 천년기가 될지라도 연합을 위한 일은 로마감독의 최고의 책임(preeminent task)이며, 베드로의 직임 없이는 결코 가견교회의 연합이 있을 수 없으며, 그 연합은 신앙, 성례전의 생애, 성직제의 연계, 신학자들의 대화는 교황의 교도권의 지도에 따라야하며, 성례전이 최종의 목표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황권과 로마 가톨릭과 관련된 자료들은 수 없이 많다. 1000년이 넘는 중세 암흑기의 지난 역사가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은 가히 쌓아둘 창고가 부족할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을 이 정도에서 줄이면서 1997년에 대총회 행정위원회의 결의로 발표된 재림교회의 공식적인 로마 가톨릭에 대한 이해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톨릭에 대한 이런 예언적 안목에 기초하여, 재림교회의 가톨릭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 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남녀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2) 인종, 국적, 종교적 신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3) 가톨릭을 포함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교단에 있다. 4) 다른 교단의 흠을 찾는 대신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배경에서 복음을 전할 기본적인 책임이 있다. 5)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과거와 미래를 기억한다. 6) 가톨릭의 심각한 불관용과 박해역사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7) 가톨릭은 정부와 연합하여 종교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성경 외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정치체제이다. 8) 임박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재림교회의 예언적 견해의 유효성(validity of our prophetic views)을 확신한다. 9) 성경의 예언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제 칠일 안식일에 초점을 맞춘 전대미문의 소란기가 있을 것을 믿는다. 10) 주요 기독교단체들을 포함하여 세계 종교들이 하나님과 안식일을 반대하는 세력들로 연합할 것이다. 11)교회와 정부가 연합하여 다시 한 번 광범한 종교탄압 (wides pread religious oppression)을 가져올 것이다. 12) 성경예언은 과거에 어떤 특정한 기독교단의 기독원칙의 훼손에 대해 책망하는 것이 역사와 성경의 관심 사안이 아니다. 13) 편견과 아집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인들이 있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건전한 기독교회임을 드러내야한다. 14) 다른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해야한다. 15) 역사적 기록을 인지하며 마지막 때에 대한 견해를 지속하는 한편, 근래의 가톨릭교회에 긍정적 변화가 있는 것을 이해하고 또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인 것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16) 재림교인들은 하나의 운동으로서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결론


21세기의 한국 재림교회는 어쩌면 위기와 도전을 동시에 맞고 있다. 그 위기란 현대진리를 축으로 일어난 재림운동에 기반을 둔 하나님의 남은교회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음을 입은 짐승, 곧 작은 뿔(계 13:3; 단 7:8, 11, 12, 25 참조)로 표상된 교황권의 강력한 재 부상(浮上)으로 성경의 예언이 부분적 성취를 거쳐 완전한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엄중한 시대와 이 시대에 감당해야할 시대적 사명이행에 둔감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재림교회는 초기에 가졌던 남은무리 의식의 유지와 발전,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종말론적 사명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현저한 부재 현상으로 근래에 이르러서는 재림신앙의 차별성 부각과 가견교회의 성장마저 현저히 둔화되었다. 이는 에베소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는 경고가 현대진리의 수호와 전달자로서의 책임을 위임받은 남은교회의 재 각성을 촉구하는 마지막 경고로 들린다.

 현대진리는 세천사의 기별로 요약 제시된 마지막 기별이다. 베이츠-화잇-에드슨 그룹을 당대에 차별화시킨 성소와 안식일 진리를 중심으로, 영혼멸절, 심판, 재림, 그리고 심각한 짐승과 바벨론에 대한 예언들(계 13-18장)은 남은교회와 그 사명을 차별화시키는 영원한 복음의 시금석으로 분류되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구속사에서 언제나 남은무리를 통해 당신의 목적을 성취해 오셨다. 이들 남은무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지상의 가견적인 교회를 구성한 하나님의 남은백성이었다. 이들은 항시 현대진리로 인해 고난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으며 1260년의 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고(계 12:6), 때가 되어 마지막 기별을 위임받아 운명의 운동(movement of destiny)의 마지막 주자로 근대역사 에 등장했다. 비록 타 교단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재림교회가 남은무리 개념을 가견적 교회에서 불가견적 교회로 확장하여 적용시키려는 복음교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향이 1950년대부터 일기 시작했으나,  근래의 본 교단의 공식적인 연구는 종말론적 남은무리인 지상의 가견적인 하나님의 교회는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계 17;14)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사명은 다른 우리, 곧 바벨론에 있는 다른 양들도 한 우리로 인도해야할 책임까지 지고 있다고 제시한 것은 실로 남은교회의 차별적 정체성의 재확인으로 보여진다(계 14:8-12; Ev 559 참조).  

재림교회는 초기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성소, 안식일, 하나님의 인에 반대되는 매일 드리는 제사의 금지와 미운 물건의 등장, 바벨론, 짐승[작은 뿔]의 표 등에 대한 역사 신학적 해석체계에서 마지막 때(단 12:4, 9)와 적그리스도(요일 2:18), 불법[멸망]의 사람[아들](살후 2:3), 작은 뿔(단 7:8, 11, 19, 25; 8:20), 첫째 짐승(계 13:1-10)을 교황권에 초점을 맞춰 해석해 왔다. 이런 해석의 기초는 이미 중세 종교암흑기의 개혁주의자들과 성서학자들의 예언해석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 근대에 이르러 교황권의 정치종교체제의 급격한 성장과 적극적이고도 잦은 세계질서 개입과 가톨릭 중심의 도덕적 질서 권장을 주일성수를 촉구하는 사목교서인 주의 날(Dies Domini) 등에서 더욱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로마 가톨릭교회만이 유일의 하나님 의 교회이며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며, 가톨릭교회는 결코 변하지 않았고 또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엘렌 화잇의 예언적 안목은 매우 놀랍다. “로마교회는 그의 계획과 경영 방식이 매우 원대하다. 그는 그의 세력을 넓히고 전 세계를 지배할 세력을 다시 얻고, 박해를 부활시켜서 개신교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없애 버리기 위한 치열하고 결정적인 투쟁을 준비하기 위하여 온갖 계책을 다 써서 그의 영향력과 권세를 증가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오늘날 도처에서 로마교는 세력을 얻고 있다.”(쟁투, 565-566)

현대진리는 종말을 살아가는 백성들과 다른 우리에 있는 백성들에게 전해야할 영원한 복음을 담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백성”에게 작은 뿔, 곧 첫째 짐승의 강력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교회가 신속히 전해야할 세 천사의 기별로 요약된 현대진리는 운명의 운동의 마지막 과업임이 분명하다(2T 78, Ev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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